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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정보

요즘 볼만한 책 추천해요. (정유정 소설의 '완전한 행복')

by 찐여사 2021. 12. 12.

넘쳐나는 영상과 정보들 속에서 숨 가쁘게 살아온 것 같아요. 틈만 나면 핸드폰 속 유튜브 영상에서 재테크다 주식이다 잘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 부여잡고 하루를 보내기 일수, 잠시 숨 고르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서점에 들러서 집어 든 책 두 권. 

 

책 표지-왼쪽부터 손석희님의 에세이 '장면들', 정유정의 장편소설 '완전한 행복'
두 권이지만 배부르다

 

가장 당기는 건 역시 정유정 표 스릴러. 내가 만났던 정유정 님 소설은 [종의 기원] 단 한 권이었지만 그 한 권으로 완전 팬이 되었어요. 서점에서 '정유정'이라는 이름을 본 즉시 집어 들었었죠.

 

우리 주변에 있다

첫 장부터 세밀한 묘사와 서술이 '드디어 정유정 표 스릴러 소설 속으로 들어왔구나!' 싶었어요.  그 여자의 잔인한 수법과 서늘하다 못해 소름 끼칠 정도로 한기가 돌고 쾌쾌한 냄새가 진동할 것 같은 집과 도구들이 연상되어서 텅 빈 집에서 혼자 읽는 4시간 동안 수차례 주위를 휙휙 둘러보게 될 만큼 무서웠어요. 고기의 뼈를 갈아 오리의 먹이로 준다는 부분은 그 여자의 살인 후 처리 기법을 그대로 상상할 수 있어서 머리가 쭈뼛 섰어요. 읽을수록 실존하는 한 여자가 떠올랐어요. 세상이 충격으로 뒤집였던 고유정 사건. 아 그 여자가 이랬었을 수도 있겠구나, 이런 사람이 이성을 끌어당기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에 자석처럼 끌리는 사람도 있구나.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일 수 있구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보면서 등골 서늘하게 깨달았던 사실이에요. 처음에는 낯선 비주얼의 사자가 궁금했다가 회를 거듭할수록 이상현상으로 인해 점점 변해가는 사람들이 두려워지는 거죠. 사람이 무섭다. 남과 여 중 약한 존재라고 각인되어있던 '여자'가, 멀쩡하게 해피밀 세트를 사 가는 여자가,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평범한 우리 사장님이 사실은 무서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 싶은.

 

 

책의 표지에는 눈코입이 없는 엄마, 아빠, 오리인형을 든 아이 이렇게 세 식구가 가만히 서 있다.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책의 표지에는 눈코입이 없는 엄마, 아빠, 오리인형을 든 아이 이렇게 세 식구가 감정 없이 서 있다. '완전한 행복'이라는 제목이 역설적이다.

인상 깊은 등장인물

배경과 인물의 섬세하고 기막힌 묘사, 정말 흡입력 강한 정유정만의 서술기법이 '지유'라는 어린 딸아이의 몸과 정신 상태의 건강이 심각하게 우려될 정도로, 그래서 책장을 넘길수록 이 아이에 대한 측은함과 안타까움으로 탄식이 절로 나오게 만들어요.

'지유'는 철저하게 '제대로' 성장하지 못해요.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대상인 엄마는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고 회사를 운영할 만큼 겉보기엔 꽤나 괜찮은 생활을 하지만, 아이의 건강을 걱정하거나 챙겨주지 않아요. 자신의 미친 짓들에 대한 것들에 정신이 팔려 아이를 하루 종일 굶기기도 하고, 기껏해야 맥도널드 해피밀을 사다 주고 그마저도 아이가 싫어하는 치즈가 들어있는 햄버거와 음료를 던져주고 몇 입 베어 먹지도 못한 아이를 자기 방으로 올려 보내죠. 

더 충격적인 건 엄마가 '잔혹한 짓'을 하던 장면을 보게 된 아이에게 '잊힐 꿈'이라는 명칭으로 꾸역꾸역 아이 가슴 깊은 곳에 구겨 넣어요.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이 가녀린 아이, 엄마밖에 의지할 곳 없는 아이, 어찌하면 좋을까.

 

 

기존의 화법과 다른 제삼자의 시선으로 서술

[종의 기원]에서는 사이코패스 주인공이 화자인 1인칭 시점으로 서술했어요. 그 사람의 뇌 속에 내가 들어있는 느낌을 받아서 그 박진감에 압도를 당했었죠. 왜 인터넷 게임 중에 총을 든 주체의 시점으로 사람들이나 좀비들을 쏴 죽이는 그런 시점 말이에요. 주인공 입장에서 이야기를 읽다 보니 아니야, 그렇게 하지 마, 제발. 나쁜 짓인걸 깨닫고 이제는 살인을 멈춰!라고 응원하게 되기도 하더라고요.

[완전한 행복]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등장인물 전반에 걸쳐 이야기가 전개돼요. 그래서인지 이 악마 같은 정신병자('병리적인 자기애성 성격장애'라고 하던데 그냥 정신병자죠.) 유나를 이해한다던지 안타까움의 응원을 하진 않았어요. 그 주변 인물들의 연민과 공감이 먼저였지요.

 

'악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주인공은 화자가 아니다. 단 한 번도 이야기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입에 지퍼를 채워 커튼 뒤에 세워둔 셈이다. 이야기의 목적을 위한 선택이었다. 악인의 내면이 아니라, 한 인간이 타인의 행복에 어떻게 관여하는지, 타인의 삶을 어떤 식으로 파괴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으므로.' - 에필로그 중

 

소감

대략 4일을 걸쳐서 다 읽게 되었는데 중간중간 틈이 나면 책을 폈다가 텅 빈 거실을 깨닫고 무서워서 첫째 딸아이의 하교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책을 펴곤 했답니다. 무서운데 눈을 뗄 수 없었어요.

자기애, 나르시시즘에 대해 다루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유나는 자존심은 매우 강하지만 사실 내면은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높은 자존심과 한없이 엇나간 자존감, 그리고 찰랑찰랑 흘러넘치는 자기애가 보태진 것 같아요. 끔찍한 소설 속 이야기들이 현실에서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을 무겁게 해요. 자신의 행복을 위해 타인에게 어둡고 무서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이기적이고 비정상적인 행위가 결국엔 좋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진리를 그 많은 살인의 시간 동안 깨닫지 못하는 주인공 유나가 안타까웠어요. 

'나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남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할 수 있는 걸 해''넌 행복할 권리가 있어' 등등 자신의 행복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하는 말들이 많이 인용되곤 하죠. 물론 나의 행복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항목이지만 나의 행복과 타인의 행복이 충돌하는 순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스스로를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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